역사(歷史)
고려 북진정책의 중요성
學而齋
2011. 4. 27. 16:09
고려의 북진 정책과 고구려 계승 의식은 식민사관의 타율성을 극복하는 우리 학계의 대응에서 강조되는 분야의 하나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즉 자주적인 우리 역사의 사례로 보는 중요한 대목이라고 하겠다.
태조는 국호를 고려로 정함으로써 고구려 계승 의지를 드러냈다. 아울러 발해 유민들을 적극 포용하고, 평양을 서경이라 하여 북진 정책의 기지로 삼았다. 이에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과는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 태조는 942년 거란이 사신 30명과 낙타 50필을 보내어 화친을 제의하자“거란은 일찍이 발해와 동맹을 맺고 있다가 갑자기 의심을 품어 그 나라를 멸망시켰으니, 이는 심히 무도한 나라로서 친선 관계를 맺을 대상이 못 된다.”라고 하며, 거란 사신을 섬으로 귀양 보내고 낙타는 만부교(萬夫橋)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이처럼 거란과의 국교 단절도 감수할 만큼 태조는 북진 정책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그리하여 태조 말년에는 청천강~영흥에 이르는 지역까지 영토를 수복했다.
한편,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뒤 신라의 지배층이 고려의 새로운 지배층으로 대거 유입되었으므로, 지배층 사이에는 고려가 신라를 계승한 왕조라는 의식도 다분히 존재했다. 거란 침입 당시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려는 대외적으로 고구려의 후신임을 내세웠지만 대내적으로 이를 일원화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국내의 제반 문제에서 신라 출신 인물들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