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에 있는 초기 백제 시대의 성곽이다. 현재 남아 있는 토성은 북벽이 300m, 동벽이 1,500m, 남벽이 200m 정도이며, 1925년의 홍수 때 유실되고 남은 서북벽 250m를 포함하면 길이는 모두 약 2,250m이다. 성벽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 북벽의 15m(해발 26m) 정도인데, 이것은 축성 당시보다 많이 깎여 낮아진 것으로 여겨진다.
유적조사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서쪽 벽이 허물어지면서 삼국 시대 전기의 청동제 초두 2점이 발견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리고 1964년 10월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팀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발굴 결과 이 토성의 성벽은 판축(版築 : 돌을 판판하게 깔고 위에 흙을 다지는 것) 방법을 사용하여 고운 모래로 한층씩 다져 쌓았음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축성 방법은 돌이 별로 없는 중국의 평야 지대에서 성을 쌓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이것이 백제에 전해져 풍납 토성·몽촌 토성을 비롯하여 백제의 성곽이나 목탑 기단 축조에 주로 이용되었다.
문헌상에 나타난 토성의 연대는「삼국사기」에 있는 286년(책계왕 1)의 사성(蛇城)의 기록으로 보아 3세기 후반이 가장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토성의 발굴 조사에서는 풍납리식 무문 토기·김해식 토기·신라식 토기 등의 토기와 도제 그물 추·물레 가락바퀴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이 성의 축조가 백제 건국 초기(기원전 18년)까지 올라갈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이 토성은 고고학적 발굴 조사와「삼국사기」등의 기록을 토대로 보면, 1세기경에 만들어져 475년(문주왕 1)에 웅진으로 도읍이 옮겨질 때까지 5백여 년간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풍납 토성은 외벽의 성곽을 비롯해 국가의 상징 기념물인 제 사터와 궁궐을 모두 갖추었을 가능성이 많은 백제 초기의 역사를 밝히는 데 꼭 필요한 곳이다. 한성 시대 백제는 온조왕(기원전 18년)에서 문주왕대까지(475년) 493년간 한 곳에서 도읍을 정하였던 것은 아니다. 홍수 그리고 고구려와의 전쟁 등으로 도읍을 여러 번 옮겼을 가능성이 있다. 그 후보지가 몽촌 토성(사 적 제297호), 이성 산성(경기도 향토유적 제1호)과 춘궁리 일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계되는 유적으로는 석촌동 고분군(사적 제243호), 방이동 고분군(사적 제270호)와 가락동 고분군으로 모두 직경 10㎞ 이내에 있다. 이들 유적은 서울 송파구와 강동구 일대의 개발에 앞서 완전한 발굴 조사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풍납 토성의 발굴은 백제 초기의 역사를 밝혀줄 좋은 증거를 많이 제시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