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문자보급운동
조선일보가‘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는 표어를 내걸고 1929년 7월 14일부터 전국 규모의‘귀향 남녀 학생 문자 보급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문자 보급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은 조선어 연구회 창립 회원이자 주시경의 제자인 장지영이었다. 그는 시작 당시부터 이 운동의 총책임을 맡았고 1931년에는 문자 보급 운동 전담 부서로 신설된 문화부 부장을 지냈다. 문자 보급을 위한 무료 교재인‘한글원본’을 만든 사람도 그였다.
1920~30년대 전개된 농민·노동 야학이 대중 운동으로서 상설 교육 기관을 통해 전개되었다면, 문자 보급 운동은 신문사에서 제공하는 교재를 사용해 여름 방학에 귀향하는 학생들이 참여하여 전개되었으므로 큰 경비나 특별한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이루어질 수 있었다.
문자 보급 운동 첫 해인 1929년에는 참가 학생 수 409명, 이들에 의하여 문맹 퇴치된 사람이 2,849명이었다. 그러나 이 숫자는 409명 중 91명의 학생이 보고한 숫자이므로 실제 한글을 깨우친 수는 1만 명은 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1930년에는 9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하였고, 1931년에는 참여 학생이 1,800명으로 늘어났다. 1932~33년 신문사의 재정난 등으로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한 1934년에는 무려 5,078명의 학생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1935년부터는 조선 총독부의 중지령으로 학생들에 의한 문자 보급 운동은 중단되었고, 1935년과 1936년에는 문자 보급 교재만 10만 부, 50만 부를 배포하였다.
조선 인구의 90%에 달하는 문맹을 타파하고 한글을 보급해 민족정신을 선양하려는 실천적인 항일 운동이었다. 비록 그 목표는 달성되지 못하였지만 일제 강점기에 언론이 벌인 캠페인 중 가장 성공적인 운동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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