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영과 발해 관련 사료>
•발해의 대조영은 본래 고구려의 별종(別種)이다. -구당서-
•발해의 대조영이란 자는 본래 속말말갈(粟末靺鞨)로서 고구려에 붙은 자로 성은 대씨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무리를 이끌고 읍루의 동모산으로 들어갔다. …… 성곽을 쌓고 살자 고구려에서 달아나 숨었던 세력이 점차 귀복하였다. -신당서-
•발해왕에게 칙서를 내렸다.“ (일본) 천황은 삼가 고려국왕에게 문안한다.” -속일본기-
•고구려의 남은 무리들이 북으로 태백산 아래에 모여 나라 이름을 발해라고 하였다.-삼국사기, 최치원의 편지 -
•옛날 당나라의 태종 황제가 고구려를 쳐서 없앴는데 그 고구려는 지금 발해가 되었다. - 동문선, 최치원 -
•발해국은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고 부여 이래의 전통과 풍속을 가지고 있다.-속일본기, 발해 무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727) -
대조영의 출신에 대해 고구려인이다, 말갈인이다라는 주장이 팽팽히 대립하였다. 절충한 견해도 나왔는데, 대조영 집단은 속말말갈인이나 6세기 말에 고구려로 옮겨 정착하면서 고구려인으로 동화되었으며,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는 고구려의 유력층으로 분류되어 영주 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할 만큼 고구려에 대한 귀속의식이 강했으므로 고구려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학계(노태돈)에서는 고구려, 백제를 부여의 별종이라 한 것과 같이 고구려 별종을 이해하고 있다. 즉, 당에 사거(徙居)당했다가 뛰어난 활동을 한 고구려 유민 왕모중(王毛仲), 왕사례(王思禮), 고선지(高仙芝) 등을 고려인이라 한 데 대해 대조영은 국가를 건설하였기 때문에 고(구)려 별종이라고 하였다고 파악한다. 한편, 발해는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계자로 여겼다. 이에 일본과 국교를 맺기 위해 보낸 국서에도 그와 같은 생각을 드러냈다. 당시 일본이나 신라인들 역시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일본이 발해를 가리켜 고(구)려라고 부른 점, 최치원이 발해를 고구려 유민의 국가로 여긴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