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산책로

불기자심(不欺自心), 우리는 국토는 작았어도 역사는 깊었던 문화민족입니다.

역사(歷史)

문화통치의 본질

學而齋 2011. 3. 1. 14:23

3·1 운동으로 일제는 종래의 무단 통치에 의한 한민족의 지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동안 한국인을 우매한 민족으로 인식하여 무단적 탄압으로 쉽게 지배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일제는 한민족의 강한 독립 의지와 강력한 항일 운동이 엄격한 헌병 경찰의 감시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과정에서 전 민족적이며 전국적인 대규모의 독립 운동이 일제 경찰이 알지 못하는 속에서 일어난 데 대해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일제는 한민족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화의 발달과 민력의 충실'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소위 문화 정치를 내세우게 되었다. 이는 겉으로는 한민족에게 문화 활동을 허용하고 자유를 보장하여 한민족의 생활을 향상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식민지 통치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었다. 그 내용은 한민족의 회유와 가장된 유화 정책으로써 한민족의 일본인화를 촉진하며, 친일파를 양성하여 한민족의 내부적 이간을 꾀하는 고등 술책이었다. 또, 한민족에게 어느 정도의 언론의 자유를 줌으로써 이를 통해 표출되는 동향을 파악하려는 교묘한 정책으로써 몇 개의 한글 신문을 허용하는 등 식민 지배를 완화시키는 체하였으나, 이는 근본적으로 그들의 식민 통치에 지장이 없는 한도 내에서였다. 일제의 소위 문화 통치는 그들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은폐하고 한민족의 지배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한민족을 이간하고 분열시키는 교활한 식민 통치 정책이었다.

 

'역사(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병참기지화 정책  (0) 2011.03.01
산미 증식 계획  (0) 2011.03.01
토지 조사 사업  (0) 2011.03.01
105인 사건  (0) 2011.03.01
조선총독부  (0) 2011.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