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은 이승만 정권이 대국민 사상통제를 목적으로 1949년 6월 5일에 조직했던 대한민국 반공 단체였다. 흔히 보도연맹이라고 부르는 이 단체는 사회주의 사상을 지닌 사람들의 사상을 전환시키고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단체였다. 이승만 정부가 제주 4·3 사건, 여수 순천 10·19사건 등 각종 사건의 수습 과정에서 전향자들을 체계적으로 보호, 관리, 감시할 기관이 필요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보도연맹원 가입은 지역마다 경찰서별로 할당된 숫자를 채우기 위해 사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회유를 통해 무리해서 가입시킨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면책과 보호의 약속과는 달리 일단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소집되어 기합이나 체벌을 받아가며 반공교육을 받아야 했다. 교육에 불참하거나 달아나면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 때문에 꼼짝없이 당해야 했다.
보도연맹에는 남로당원이었다가 전향한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었으며, 활동 강령은 대한민국 정부 절대 지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절대 반대, 공산주의 사상을 배격 등이 있었다. 연맹원들은 지하의 좌익분자 색출과 자수 권유, 반공대회와 문화예술행사 개최를 통한 사상 운동 등 실천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보도연맹은 반정부 극좌 세력을 억제하여, 이승만 정권의 안정화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국군 및 경찰이 보도연맹원들의 인민군 가담이나, 기타 부역행위를 우려하여 전국에서 이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하는 보도연맹학살사건이 발생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 등을 포함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4,934명과, 10만 명에서 최대 120만 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인들이 살해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 학살사건은 오랫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철저히 은폐했고 금기시해 보도연맹이라는 존재가 잊혀져 왔지만, 1990년대 말에 전국 각지에서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피해자들의 시신이 발굴되면서 보도연맹 사건이 실제 있었던 사건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보도연맹 학살이 진행된 와중에서 운좋게 목숨을 부지한 보도연맹원들도 있고, 유가족도 살아있었지만 아무도 이러한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들이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곧 자신도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 끌려가거나 국가권력에 의해 살해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철저히 은폐됐고 오랜 기간 동안 금기시되어 왔다. 이후 박정희 정부에 들어와서도 반공이 국시가 될 정도로 반공정책이 강화되면서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두려움 즉,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가 생겨나 철저한 반공만이 살길이라는 사고를 갖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좌익 사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의식이 뿌리깊게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좌파냐 우파냐의 이분법적 사고가 강하게 생겨났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고에는 과거의 화이론적인 사고도 보태졌을 것임에 틀림이 없겠지만 사고의 유연성이 사라진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 다시 말하면 사회주의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지 기득권자의 자유보다는 전국민의 평등에, 자본가보다는 노동자들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주장한다면 좌파나 사회주의자 또는 종북주사파로 매도하려는 사고의 편협성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강하게 남아 있다는데 오늘날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2002년 피파 한일 월드컵 때 등장한 붉은악마로 인해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보수 세력 속에서 그 잔재가 남아있어 우리 사회를 흑과 백으로 선과 악으로만 양분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6.25전쟁때 우리를 도와준 미국에 대한 고마움과 베트남전쟁에서 벌어드린 돈으로 나라의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자부심에서 미국은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자 무조건 우리가 따라야 할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국을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 각종 보수단체의 집회에서 성조기를 마구 흔들어댄다. 미국정부의 입장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도 말이다.
2009년11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정부는 국가기관에 의해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재에도 사건 진상 조사와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히틀러와 일본 군부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가,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이 자행한 킬링필드 사건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던 것이다, 그것도 역사와 문화를 같이한 같은 동족끼리.
<史臣曰>
친일파가 이승만 정권에 협조하며 친미주의자로 변신하여 생존했고 또 박정희 정권과 5공 군부 세력에 기생하며 지금까지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보수를 가장한 친일 수구세력들은 아직도 봉건시대에나 있을법한 수직적 상하관계만을 추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노후한 위정자가 되어 젊은이들의 앞날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남아 있다. 역사의 시간은 늘 젊은이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일이 곧 그대들이 속죄하는 역할인 것을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분명히 후대들은 그대들의 잘못만을 지적하지 않고 공과 사를 분명히 드러내어 나누어 주되 그 판단은 후손들에게 맡길 것이다. 이것이 역사이다. 지금은 소수의 선각자가 나라를 이끌어 가는 세상이 아니라 집단 지성의 힘이 위정자들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새겨야 할 때이다.
'역사(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의 나치협력자 청산 (2) | 2024.12.12 |
---|---|
수능과 한국사능력시험을 대비한 한국사 정리 (0) | 2020.11.19 |
청주지역 사림들의 교육적 전통과 학맥 (0) | 2018.10.29 |
청주 신항서원 (0) | 2018.10.29 |
단재 신채호 선생 관련 자료 (0) | 2012.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