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국가(사회)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치적으로는 전제군주제가 아닌 입헌군주제나 공화정의 형태를 추구하며 의회를 통해 국민의 참정권이 전제되는 민주 정치가 구현되는 국가(사회)를 말한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법적 장치로 헌법이 제정되어 법치국가로 나아갈 때 참된 민주 정치가 실현되는 근대국가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계급 사회가 아닌 사회 각 계층이 평등한 사회를 뜻한다. 평등 사회의 출현은 지난날의 사회 체제를 붕괴시키고 피지배층이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을 뜻한다. 즉, 산업 활동이 다양해지고 활발해지면서 누구나 자유로이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풍부한 자본력과 전문적 경영 방식에 의하여 생산력의 증대가 추구되는 사회를 말한다. 사상적으로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합리화의 추구를 뜻한다. 즉, 절대적인 가치 체계에 의한 불합리한 구질서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개인의 존엄성과 개인적 경험을 존중하는 사회를 말한다.
조선 후기에 나타난 근대적 요소를 경제·사회·사상·문화·정치적인 측면에서 찾아보면,
경제적 측면에서는, 이앙법 같은 영농 기술의 발달로 농업 생산력이 증대하였으며, 경영의 합리화로 경영형 부농이 출현하고, 영리성을 추구하는 경제 행위가 왕성해지면서 도고, 독립 수공업자 등이 크게 성장하여 농업 중심의 자연 경제 체제를 유통 경제구조 즉, 상품 화폐 경제 구조로 바꾸어 나가게 하였다. 자유로운 상공업 활동,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한 시장 가격의 형성, 자본과 기술이 연결되는 선대제 수공업, 광업에서 덕대의 등장에 의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 같은 자본주의적 경영 요소 등이 조선후기를 자본주의의 싹이 트는 시기로 보아 자본주의 맹아론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신분제가 유지되고 있는 사회이기는 했지만 점차 서얼에 대한 차별 대우가 폐지되어 갔고, 일부이기는 하지만 공노비의 해방이 순조 때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완전한 평등사회는 아니었지만 신분계층 간의 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양반이 크게 증가하여 세습적이고 폐쇄적인 신분제가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하여 평등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상적 측면에서는, 집권층의 성리학의 절대화 경향에 맞서 성리학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바로 실학이다. 실학은 현실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실용적인 사회 개혁 방안이었으며, 개화사상까지 연결되어 학문적으로 근대화로 나아가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천주교의 전래로 평등과 자유의 이념이 보급되었으며, 동학의 창시로 인간 존중 사상을 확산시켜 농민층 중심의 사회 개혁 운동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지식을 소유한 소수의 집권자들인 양반 중심의 문화에서 문화를 창조,창작하는 주체가 중인, 서얼, 서민으로 확대되었으며, 서민들이 문화 창작과 향유의 주체로 등장하여 점차 대중문화의 방향으로 이행되고 있는 서민문화의 발달 모습 속에서 근대사회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나 조선 후기 사회에서 자율적·주체적으로 이룩되었던 근대적 요소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정치적인 측면에서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즉 붕당 정치의 변질과 세도 정치의 등장으로 정권 창출의 사회적 기반이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던 근대 지향적인 움직임을 수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탄압하여 혼란이 가중되고 국력이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에 우리는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지지하며 서세동점의 역사적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여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여 우리의 근대사가 아픔의 질곡에서 오랫동안 헤매야 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