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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

세계 경제 대공황

學而齋 2011. 4. 12. 14:11

대공황이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과잉 생산에 대해 수요가 따라가 주지 못하여 산업계 전체가 불황을 맞게 된 현상이다. 미국에서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곧 전 세계에 파급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의 원인이 되었다.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에 군수품을 판매하면서 공업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다. 전쟁 기간 중 미국의 공업 생산은 200~300% 가량 증가했고, 금 보유액도 1913~1921년 사이에 7억 달러에서 25억 달러로 늘어났다. 매년 무역 흑자를 기록하며 호황을 누리던 미국은 유럽에 전후 복구 자금을 빌려주며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부상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1929년까지 미국의 실질 성장률은 약 80%에 달하였다. 기업들은 꾸준히 사업을 확장했으며, 생산 공정을 표준화하여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이에 미국 최초의 국민차 T형 포드의 경우 1910년대 말에는 2천 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100만 대 가량 생산되었는데, 1920년대 후반에는 290달러의 가격에 500 만 대가 생산되었다. 이와 같이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면서 강철, 기계, 유리, 고무, 전기, 석유 산업도 유기적으로 함께 발전하였다. 경기 호황 속에서 기업들은 여유 자금을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였다. 엄청난 자금이 증권시장으로 몰리면서 증권이 실제 가치보다 몇 배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거품 현상이 심해졌다. 한편 경기 호황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은 크게 오르지 않았으므로, 소비가 생산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재고가 쌓이자 기업은 생산을 줄이고 노동자를 해고하였다. 소비와 생산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된 상황에서 결국,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뉴욕의 증권 거래소에 1,600만 주가 넘는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주가가 폭락하였다. 이날 월스트리트에서만 투자자 11명이 자살하였다. 10월 29일에는 하루 동안 투자자들이 400억 달러에 이르는 주식을 시장에 내놓아 주가가 더 떨어졌다. 이 주가 폭락은 전 산업, 금융업에 파급되어 대공황이 일어났다. 기업이 도산하고,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었던 은행도 함께 파산했다. 그 결과 실업이 늘어나고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미국에서 1929~1933년 사이에 전체 산업의 생산이 50% 이하로 감소했고, 1931~1932년 사이에 5천 개가 넘는 은행이 파산했다. 1929년의 실업률은 3.2%였으나 5년 뒤에는 26.7%를 기록했다. 대공황은 농업에도 타격을 주었다.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이 떨어져 생산비조차 회수할 수 없게 되자,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익어가는 밀밭에 불을 지르거나 트랙터로 밭을 뒤엎었다. 이미 생산한 농산물을 바다에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채무 관계가 얽혀 있던 유럽을 거쳐 전 세계로 퍼졌다. 그 이유는 당시 개별 국가 경제가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고, 자본의 흐름이 자유로웠던 반면,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자본주의 국가들과 달리 저개발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은 대공황의 여파에서 벗어나 있었다. 애초부터 소비를 능가하는 과잉 생산이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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