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27대에 여왕이 임금이 되니 비록 도는 있으나 위엄이 없으니 구한(九韓)이 침범하는 것이다. 만약 용궁 남쪽의 황룡사에 9층 탑을 세운다면 주변국이 침범하는 재앙을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다. 1층은 일본(日本), 2층은 중화(中華), 3층은 오월(吳越), 4층은 탁라(托羅), 5층은 응유(鷹遊), 6층은 말갈(靺鞨), 7층은 거란(丹國), 8층은 여적(女狄), 9층은 예맥(濊貊)이다. -“ 삼국유사”-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게 된 유래에 관한 사료이다. 황룡사는 호국을 위한 국찰이었으며 진골만이 주지승이 될 수 있었던 신라의 핵심적인 사찰이었다. 553년(진흥왕 14)에 짓기 시작하여 566년에 완성되었다. 이후 6세기 말에 중건을 시작하여 645년에 9층 목탑이 완성되었는데, 목탑의 각 층은 진압해야 할 주변국들을 상징하고 있다. 이는 신라의 호국 불교의 성격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래의 사진은 20여년 전 황룡사 절터에서 주운 기와 파편입니다. 꽃무늬(보상화문?)가 무척 아름다워서 간직하고 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