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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

왕건의 호족융합정책

學而齋 2011. 4. 27. 16:10

태조 즉위 이후에도 종종 호족들의 반란이 일어나 왕권이 불안했다. 이에 태조는 호족들을 포섭하기 위해 중폐비사(重幣卑辭,많은 예물과 겸손한 말)의 태도로써 화친하고자 했다. 태조는 귀부해 오는 자들에게 벼슬을 내리거나 개경으로 이주하는 것을 허용하고 자기 근거지에 대한 지배를 어느 정도 인정해 주었다. 또한, 호족들에게 왕씨 성을 하사하여 의제(擬制) 가족 관계를 맺거나 유력 호족의 딸과 정략결혼을 했다. 태조의 부인은 모두 29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출신지가 전국에 두루 걸쳐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주 유천궁의 딸인 신혜 왕후 유씨, 나주 오다련의 딸인 장화 왕후 오씨, 충주 호족 유긍달의 딸, 후백제 견훤의 사위였던 박영규의 딸, 신라왕 김부의 큰 아버지인 김억겸의 딸, 평주 호족 유금필의 딸, 황주 호족 황보씨의 딸 등이 있다.

이와 같이 고려는 호족을 통합하면서 세워진 국가였다. 태조는 혼인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고 군사적인 지지 기반을 확대하였으며, 나아가 많은 자손을 두어 고려 왕실의 번성을 꾀하려했다. 그러나 훗날 왕위 계승을 두고 왕자들 및 그들의 외가인 호족 세력들이 대립하면서 왕권은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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